조선 시대 양반들은 정실 외에 ‘첩’을 두곤 했습니다. 이런 첩 제도는 대한민국이 건국되며 사라졌는데요. 사실 1960~70년대만 해도 돈 좀 있다는 이들은 ‘첩’을 여럿 두기도 했습니다. 특히 창업 1, 2세대들은 본처가 아닌 첩에게서 얻은 자식을 입적시키기도 했는데요. 이 중에는 연예인과 낳은 자식도 상당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회장님의 ‘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여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롯데 신격호 회장의 사랑
미스 롯데 1호 ‘서미경’

회장님의 내연녀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서미경입니다. 서미경과 고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의 관계는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되기도 했죠. 서미경은 과거 방송계 등용문으로 여겨진 ‘미스롯데’ 출신입니다. 그는 1972년 15살의 나이에 미스롯데 1회에 출전해 ‘미스롯데 1호’가 됩니다. 이후 롯데 전속모델로 활약하며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카피를 히트시켰죠. 그는 안양 예고로 진학한 이후에는 드라마, 영화, 광고부터 MC까지 두루 섭렵하며 연예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걷습니다.

그러나 서미경은 22살이 되던 1981년, 돌연 은퇴를 선언합니다. 서미경은 은퇴 이유로 유학을 들었는데요. 당시 한 일간지는 “서승희(서미경의 예명)가 4월에 유학을 떠난다. 강력한 기대주인 상황에서 별안간 유학 가는 것은 ‘강력한 스폰서’가 있다는 의미”라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때만 해도 의혹뿐이었는데요. 서미경의 은퇴 선언으로부터 7년이 지난 1988년, 서미경과 신격호 사이에서 난 83년생 딸이 신유미가 호적에 오르며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로 드러나게 됩니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40세에 가까웠던 만큼 서미경과 신격호의 관계는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는데요. 신유미만 호적에 올랐을 뿐 서미경은 별다른 대응 없이 일본에서 은둔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한편 신격호를 옆에서 보필했다는 한 인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 회장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서미경뿐이다. 서미경 이야기할 때는 눈빛이 달라진다. 반짝거릴 정도다”라고 전했습니다.

서미경에 대한 신격호의 애정은 주식에서도 드러납니다. 신격호는 1997년 롯데 그룹 경영권의 핵심인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3.6%를 서미경에게 넘깁니다. 신격호 사후 밝혀진 서미경, 신유미의 보유지분은 무려 6.8%에 달했죠. 이는 신격호의 두 아들 신동주(1.6%), 신동빈(1.4%)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입니다. 한편 2002년에는 서미경과 신유미의 이름을 하나씩 딴 경유 물산을 세워 2003년 3.2%의 지분을 증여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서미경은 유기개발과 유원실업의 소유주로 준재벌급 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대 정주영만 바라본
배우 김경희

김경희는 고 현대 정주영 회장의 내연녀입니다. 숨겨져 있던 그의 존재는 정주영 회장 사후 김경희가 현대가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밝혀졌죠. 김경희는 1953년생으로 어린 시절 경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놀러 갈 정도로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다섯 살부터 발레를 시작했던 그는 영국과 러시아로 발레 유학을 준비했었는데요. 입시 전 재미 삼아 본 탤런트 시험에 합격해 배우의 길에 들어섭니다.

김경희는 유학 대신 연극 영화과에 진학합니다. 그러나 1973년 버스가 끊긴 밤거리에서 정주영 회장을 만나게 되죠. 김경희의 첫 감상은 “차 별로네”였는데요. 이때의 만남을 계기로 정주영은 1여 년간 김경희를 쫓아다니며 구애합니다. 김경희와 연인이 된 정주영은 김경희 어머니를 만나 “따님을 맡겨주세요. 평생 밥은 굶기지 않겠습니다”라며 결혼 허락까지 받아냈죠. 그러나 당시 이미 정주영은 결혼한 유부남이었습니다.

서미경이 유복한 생활을 한 것과 달리 김경희는 첩이 된 후 말 그대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무엇이든 10년 쓰는 정주영 회장의 근검절약 정신 때문이었는데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김경희는 이때부터 사치는 물론 자산가인 어머니의 돈마저 쓰지 못하게 강요받았죠. 정주영은 김경희에게서 두 딸을 얻었지만 미국 생활 당시 생활비 지원은 약 100만 원에 그쳤습니다.

애틋함이 남아있던 두 사람의 관계는 1992년 대통령 선거부터 어긋나게 됩니다. 김경희가 두 딸의 호적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요. 대선 기간이었던 정주영은 선거 이후 호적에 올려주겠다 했지만 김경희의 재촉에 역정을 내게 됩니다. 이후 김경희는 2001년 정주영이 영면할 때까지 그를 만나지 못했죠. 이후 소송을 통해 친자임을 인정받고 현대가에서 약 100억 원을 받았는데요. 김경희는 어머니 재산까지 약 800억 원을 보유했지만 2015년 모든 재산을 탕진한 데다 거액의 빚을 져 미국에서 진행된 딸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드라마로 제작된 러브스토리
KBS 아나운서 장은영

장은영은 본처의 폭로로 세상에 밝혀진 내연녀입니다.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은 70년대 여성 듀엣 그룹 ‘펄시스터즈’ 멤버 배인순과 1978년 결혼했는데요. 두 사람은 20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1998년 이혼합니다. 배인순은 이혼 이유를 함구하다 2003년 에세이를 통해 최원석의 내연녀 장은영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배인순은 정은영에게 푹 빠진 최원석이 이혼을 강력하게 요구해 이혼하게 됐다고 전했죠.

최원석과 장은영은 1992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장은영은 미스코리아 ‘선’ 출신 KBS 아나운서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요. 평소 장은영의 팬이었던 최원석은 장은영을 동아그룹 임직원 단합대회에 초대합니다. 명분은 회사 뒤풀이 진행자였는데요. 최원석은 반드시 장은영이어야 한다며 특별지시를 내렸습니다. 안면을 튼 최원석은 이후 다양한 이유를 대며 장은영을 찾아갑니다. 1994년에는 이미 연인 관계로 발전해 최원석의 책상에 장은영의 사진이 올려져 있을 정도였죠.

위에서 소개한 두 내연녀와 달리 장은영은 본처 자리를 차지합니다. 두 사람은 1999년 27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식을 올렸죠. 장은영은 최원석의 아이를 키우고 시집, 장가를 보내 손주까지 보는 한편 최원석의 법적 다툼이나 건강을 챙기며 내조에 힘을 들였는데요. 정작 자신의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은 2010년 이혼 소식을 전했죠. 최원석은 “결혼생활 동안 너무 미안했다. 미안함의 표현으로 이혼하게 됐다”라고 전했는데요. 아들 은혁 또한 이혼 후 ‘마음을 잘 추스르라’라는 문자를 보내 최원석 자녀와의 다툼으로 이혼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한편 장은영은 2011년, 휠모아 인터내셔널의 이원석 대표와 결혼 소식을 전합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소개팅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이혼 후 장은영이 마련한 집이 이원석 대표 집과 도보 10분 거리에 있었던 것이죠. 오며 가며 친해진 두 사람은 이원석 대표의 프러포즈로 2011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직후 장은영은 그토록 원했던 자신의 아이를 낳았죠. 다사다난했던 장은영의 삶은 후에 드라마 ‘태양의 신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