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넷플릭스에 영화 <낙원의 밤>이 공개됐습니다. 한국 느와르 영화를 이끄는 박훈정 감독과 마치 악역을 하기 위해 태어난 듯한 페이스를 가진 엄태구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죠. 동시에 K-느와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데요. K-느와르란 미국, 홍콩 같은 느와르 대작을 많이 만들어낸 나라의 영화와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색채가 살아있는 느와르 장르의 작품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느와르’가 어떤 장르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느와르와 K-느와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래서, 느와르가 뭐라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황해>, <독전>

느와르의 정의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우선 사전에 ‘느와르’를 검색하면 ‘세상을 사람들의 탐욕이나 잔인성이 가득한 암울한 곳으로 묘사하는 영화’라고 나옵니다. 이 사전 상의 정의가 곧 넓은 의미의 느와르가 됩니다. 우중충한 배경에, 매사 심각하고 우울해 보이는 등장인물들, 피가 튀는 삼엄한 뒷골목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전부 아우르죠. 이 넓은 의미의 느와르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로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 1>

좁은 의미의 느와르는 넓은 의미의 느와르에서 갈라져 나온 한 줄기입니다. 느와르에서 첩보물인 에스피오나지, 냉혹하며 폭력에 무감각한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하드보일드 등이 파생되면서 세분화된 정의입니다. 좁은 의미의 느와르는 우선 느와르 영화의 기본 분위기에 갱, 마피아, 조직폭력배 등을 필수적인 요소로 삼습니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최근 영화인 <낙원의 밤>과 고전 명작인 <대부> 3부작이 있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복수는 나의 것>
<베를린>, <공작>

에스피오나지, 하드보일드, 느와르 전부 비슷하게 들리는데, 사실 이 세 장르는 무 썰 듯이 딱 자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느와르에 스파이가 등장하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베를린>, <공작> 같은 에스피오나지 영화가 되고, 굳이 암흑세계를 다루지 않아도 느와르 분위기를 유지한 채 훨씬 딱딱하고 냉혹한 인간의 감정을 조명하면 <독전>, <복수는 나의 것> 같은 하드보일드 영화가 되죠.

차갑고 잔인한
느와르의 계보

<대부 1>
<대부 3>
<대부 2>, <대부 3>

‘느와르’라는 장르는 프랑스에서 유래되었지만, 재밌게도 느와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미국이 시작이었습니다. 알파치노,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대부> 3부작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미국 느와르 영화는 알 파치노 한 명이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죠. 알 파치노는 <대부>에서 미국의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인 ‘콜리오네 패밀리’의 막내아들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조직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콜리오네의 수장으로 군림하는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죠.

<스카페이스>

알 파치노의 또 다른 주연작 <스카페이스>도 명작 중 명작이죠. 쿠바 이민자 출신인 토니 몬타나가 한낱 접시닦이에서 미국을 장악한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서서히 욕망과 권력에 물들어 변해가는 토니의 감정을 완벽하게 연기해낸 알 파치노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대부 2>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로버트 드 니로 또한 알 파치노 못지않게 느와르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입니다.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대부 2>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20세기 밀주법으로 부흥한 미국 갱스터의 일면을 역사극에 가깝게 그린 명작 중의 명작이죠.

<영웅본색>

느와르를 논하면서 홍콩을 빼놓을 수 없죠. 홍콩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알린 것은 <영웅본색>이 시작이었습니다. <영웅본색>은 주윤발과 오우삼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주윤발의 쌍권총, 성냥개비, 프렌치 코트와 선글라스는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나 오마주되기도 하죠.

<무간도>
<디파티드>
<무간도>

<영웅본색>이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를 알렸다면, <무간도> 3부작은 홍콩 느와르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사실상 경찰이 조직에 잠입하고, 조직원이 경찰에 잠입한다는 언더커버를 다룬 영화의 시초이자 최정점을 달리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이 <무간도>의 판권을 사 맷 데이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리메이크작 <디파티드>를 만들기도 했죠.

의외로 유서 깊은
K-느와르의 세계

<초록물고기>
<넘버 3>, <쉬리>

과장을 살짝 보태서, K-느와르의 기원을 찾으려면 한석규 배우를 따라가면 됩니다. 20세기 느와르계의 신지평을 열었던 3편의 영화 <초록물고기>, <넘버 3>, <쉬리>에서 전부 주연을 맡은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 작품은 K-느와르의 기틀을 다진 작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한국 영화계에서 어마어마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죠.

<넘버 3>
<우아한 세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쉬리>
<달콤한 인생>,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후로 K-느와르 영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넘버 3> 갈래와 <쉬리> 갈래죠. <넘버 3>처럼 암흑세계의 조직과 조직원들을 그리지만 이 세계는 낭만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찌질해 보입니다. 대표작인 영화로는 <우아한 세계>, <열혈남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이 있죠. 반면 <쉬리>처럼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의 세계관입니다. 여기에 비교적 스케일이 큰 액션과 로맨스가 들어갈 수도 있죠. 대표적으로는 <달콤한 인생>, <황해>, <독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이 있습니다.

<신세계>

따지고 보면 박훈정 감독도 후자 쪽으로 분류되는 감독입니다. 정확히는 홍콩 느와르의 영향을 진하게 받아 그걸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영화가 주특기인 감독이죠. <신세계>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의리라는 점은 <영웅본색>의 향기가 나고, 조직에 잠입한 언더커버 요원을 다룬다는 점에서 <무간도>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낙원의 밤>

이번에 개봉한 <낙원의 밤>은 <신세계>와는 사뭇 다른 색을 띠고 있습니다. <신세계>보다는 스케일이 작아졌고, 인물들 간의 이익 관계나 수 싸움보다는 개개인의 감정선에 집중한 작품이죠. 그 빈자리를 메꾸는 것은 캐릭터들의 카리스마입니다. <신세계>의 모든 인물들이 나름의 카리스마를 가져 관객을 홀린 것처럼, <낙원의 밤>의 모든 인물들, 하다못해 큰 대사가 없던 재연의 삼촌 쿠토도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나왔습니다. 다소 떨어지는 개연성을 배우들의 열연으로 메꿔 호평을 받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