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이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과는 다른 특기장점 또는 개성 있는 외모가 있어야 합니다하지만 너무 뛰어난 외모는 오히려 코미디 무대를 방해하곤 합니다실제로 개그맨을 하기에는 너무 잘생긴 외모로 돌연 TV에서 사라진 개그맨이 있었죠과연 이 개그맨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잘생긴 개그맨, 정재환

1980~2000년대 초반지금의 유재석만큼이나 스타급 MC였던 인물이 있습니다말쑥한 외모에 훤칠한 키두 손으로 공손히 맞잡은 마이크가 트레이드마크인 정재환입니다그는 지난 1979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통해 데뷔했습니다이후에는 1983 MBC 11’에서 MC로 정식 데뷔하는가 하면 웃으면 좋아요’, 코미디전망대 등의 프로그램에서도 개그맨으로 활동했죠.

하지만 개그맨을 하기에는 너무 잘생겼던 정재환은 10년 가까이 무명 생활을 보내야 했습니다실제로 개그맨보다는 영화배우나 모델을 했으면 더 어울렸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을 정도였죠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MBC ‘청춘 행진곡’ MC를 맡으며 장군의 아들을 패러디한 장군의 손자 코너에서 김두한에 대응되는 연기를 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후 1991년 정재환은 SBS 개국과 함께 MBC를 떠나 SBS로 이적해 SBS ‘쇼 서울서울 KBS 2TV 퀴즈 버라이어티 퍼즐특급열차의 메인 MC를 맡으며 더욱 유명해졌습니다특히 쥐돌이를 잡읍시다라는 문장 퍼즐 코너는 상당히 인기를 끌었고방송 종료 이후에도 그는 우리말 지킴이로써 우리말에 대한 책을 여려 권 펴내기도 했죠하지만 당시 정재환은 최양락이휘재신동엽홍록기 등에 밀리며 하락세를 겪고 1994년 프리랜서를 선언합니다.

공자 닮고 싶어 시작한 공부

이후 정재환은 2000불혹이라는 늦은 나이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합니다. 한국사한글운동사를 공부하며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했죠. 또 2013 8월에는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이후 지난 2018년 그는 KBS Cool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출연해 처음 논어를 읽은 건 21살 때고 두 번째가 31살이었다.”라며 “그때부터 공자님을 100분의 1이라도 닮고 싶다는 생각을 건방지게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2013년 해방 후 조선어학회〮한글학회 활동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모교에서 강의 제안을 받았습니다하지만 그는 한 학기 만에 고사하고 필리핀으로 1 5개월간 연수를 떠났습니다한글운동가가 왜 영어를 배우러 필리핀에 갔을까 의아할 수 있겠지만 그의 생각은 남달랐습니다.

한국어 발전은 ‘번역’에 있다

필리핀 연수 이유에 대해 그는 인터뷰에서 언어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통해 더 풍성해질 수 있다.”라며 번역을 예로 들었습니다.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른 언어가 있을 때, 그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말이 풍족해진다는 것이었죠. 이어 그는 “새로운 말을 만들고 외국어에 대응하는 창의력 강한 언어를 만드는 게 우리말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라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또 그는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에 반대하며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모국어가 자리 잡기도 전에 영어를 배우면 미래 세대의 한국어 사용에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죠. 특히 그는 교육부 장관이 유치원에서 영어교육한다 밝힌 점에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젠 개그맨 아닌 교수로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정재환은 지난 2017 2학기부터 성균관대학교 역사 관련 핵심교양 과목인 한국사 개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이에 국어국문학 교수이자 역사학 교수로서 교양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죠지난 4 25일엔 MBC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해 역사 속에 해답이 있다를 주제로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한글문화연대 결성에 앞장서며 우리말 사랑에 빠진 개그맨 정재환은 지금도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잘생긴 개그맨에서 사학과 교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정재환그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