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들은 크게 두 가지 선택지를 맞이하게 됩니다. 안정적인 일을 하느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지만 불안정한 일을 하느냐죠. 현실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안정적인 일을 찾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 차의대를 졸업했음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을 향해 돌진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그가 선택한 직업이 무엇일지, 함께 알아보시죠.

1. 의대 졸업, 하지만…

차의과대학은 대학교 이름에 의대가 들어가는 대학교입니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오해하기 쉽죠. 다만 완전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화제의 주인공인 ‘천태만상’ 트로트 가수 윤수현이 차의과학대학교(전 포천중문의과대학교)에서 보건학을 전공했기 때문이죠. 다만 졸업 이후 그의 첫 정규직 취업은 순탄하면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수학 강사나 과외 등 평범한 방학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경매사 아르바이트를 거쳐 타로카드 아르바이트로 하루 30만 원까지 수익을 올린 적도 있죠. 학업도 충실히 이어갔습니다. 2011년 국민보험공단에서 인턴을 마치고 2012년 차병원 감염 관리팀에 취업했습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달 만에 사표를 냈다.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었다”라고 밝혔죠. 무작정 포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턴 3개월, 연수 3개월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임상시험 모니터 요원 관련 수료증까지 취득할 만큼 열의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과거 무대에 섰던 경험이 그를 퇴사하게 이끌었습니다.

2. 2007년부터 쏟아졌던 가요계 러브콜

사실 윤수현의 트로트 실력은 2007년 그가 대학생일 때 이미 공인받은 바 있습니다. 2007년 대학생 1학년이었던 그가 MBC 대학생 트로트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죠. 이곳에서 그는 가수 이무송의 눈에 띄어 “너 범상치 않다”라며 ‘당돌한 여자’라는 곡을 추천받기도 했습니다.


2학년인 2008년에는 KBS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각종 연예 기획사의 러브콜이 쏟아졌죠. 그러나 장기 계약이 무서웠다는 윤수현은 직접 자신을 지방자치단체에 홍보해 행사를 뛰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병원 취업 후에도 노래 관련 아르바이트를 지속했죠.

마침내 병원 정규직 대신 트로트 가수를 선택한 윤수현운 포트폴리오를 만든 뒤 당시 장윤정, 박현빈을 배출한 트로트 명가 ‘인우기획’으로 돌진했습니다. 대표님과 3시 약속 있다는 거짓말로 통과해 실제로 인우기획 홍익선 대표를 만나기까지 했죠. “너 누구냐?”라는 질문에 “시험 보고 싶어 왔다”라며 노래부터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강제 오디션 이후 바로 연락이 오진 않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윤수현은 아나운서 오디션을 봐 채널A에 합격 통보를 받았죠. 그러나 이때 인우기획에서 연락이 와 여러 차례의 오디션 끝에 아나운서를 포기하고 트로트 가수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낸 첫 번째 앨범은 2014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월호 침몰 사고로 트로트 가수가 활동할 곳이 없었죠. 이때 그는<6시 내 고향>의 리포터로 활동하며 전국을 돌았습니다. 원했던 노래는 부르지 못했지만, 고기잡이, 농사, 우렁이 잡기 등 각종 노동을 하며 생업의 가치를 깨달았죠. 윤수현은 이때의 경험이 삶의 가치관을 크게 바꾸었다고 밝혔습니다.

본격적인 가수 활동은 2015년부터였지만, 그가 주목받은 것은 한 중학생이 그의 곡 ‘천태만상’을 부른 ㅇ 영상이 올라온 이후였습니다. 해당 영상의 조회 수가 1500만을 돌파하면서 원곡자인 윤수현이 주목받게 된 것입니다. 당시 박현빈과 함께 무대에 서는 등 트로트계에서 이름을 조금씩 알리던 윤수현이지만, 중학생의 영상은 전국에 이름과 곡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루 5개, 못해도 2개의 행사가 있을 만큼 인기가 높아졌죠.

음원 사기로 무산되었던 어머니의 꿈을 대신 이룬 윤수현, 그는 장윤정·홍진영에 이어 트로트의 일반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한동안 천편일률적이었던 아이돌 프로그램이 각종 논란으로 잠잠해진 가운데 그의 노래가 전국에 울려 퍼지길 기대해봅니다.

최찬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