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을 아시나요? 이 말은 76억 원 횡령한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의 형기가 560만 원을 훔친 자신보다 낮다는 데 불만을 품고 탈주한 탈주범 지강헌이 외친 말입니다. 그는 잡히기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대부분의 탈주범은 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붙잡히고 말죠. 하지만 정말 오랫동안 잡히지 않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탈주범들이 있었는데요, 최근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시죠.

1. 티셔츠 완판의 전설, 신창원

좀 길게 탈출한다 싶으면 언론에서 붙이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제2의 신창원’인데요. 이는 1999년 7월 검거된 신창원이 무려 2년 6개월 동안 탈주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담당 형사였던 원종열의 총을 맞은 상태에서 경찰의 추격을 뿌리치는 등 경찰과 마주한 상황에서 13번이나 도주에 상고였습니다. 화제가 되면서 그의 힘겨웠던 성장 과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는 자신의 저서에 자신의 성장환경을 기록했습니다. 4남 1녀 중 넷째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를 초등학교 1학년에 잃고 계모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 성장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초등학교 선생이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고 하고, 배고파서 먹을 것을 훔치다 걸렸을 때는 아버지가 훈방 조처된 그를 끌고 소년원에 직접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거쳐 범죄자가 된 신창원은 1989년 공범 3명과 강도행각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공범 중 한 명이 살인을 저지르며 강도치사죄로 1989년 검거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살해 전과가 있는 조두순이 2년 형을 받은 것과 비교되죠. 이후 신창원은 1997년 4개월 동안 잘라낸 부산교도소 화장실 창살을 비집고 탈출했습니다. 이후 신창원은 144차례의 절도행위를 추가로 저질렀죠.

그는 절도한 돈으로 유흥업소 종사자를 유혹해 은신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와중에 동거녀 오빠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자 직접 경찰서와 검찰청을 드나들며 합의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수리하러 온 가스 수리공의 신고로 검거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입었던 화려한 니트가 유행하기도 했죠. 수리공은 경찰 특채되었으며 신창원은 무기징역에 22년 6개월 형을 추가로 더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교도소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해 고입,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심리상담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습니다. 그러다 영치금 3000만 원을 캄보디아 빈민촌 소년의 수술비로 보내는 등의 선행을 베풀기도 했죠. 현재 광주 교도소에 수감 중인 그는 최일도 목사와의 편지에서 캄보디아에 가서 목수로 사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습니다.

2. 후시딘으로 탈옥, 최갑복

2012년 절도, 폭행으로 수감되었던 최갑복은 정상적으로 형을 살고 출소했었습니다. 그러나 대구 동구 효목동에서 유사 휘발유를 팔다 건물 주인을 폭행해 다시 검거되었죠. 결국 최갑복은 2012년 유치장에 입감되었는데요. 놀랍게도 가로 45cm, 세로 15cm의 배식구와 몸에 후시딘을 발라 탈주를 감행했습니다.


그는 이전에도 1억 원의 금품을 훔쳐 체포된 이력이 있습니다. 이때도 그는 경찰 호송 버스가 서행하는 틈을 타 포승을 풀고 쇠창살을 뜯어 20cm가량의 틈으로 탈출했었죠. 다만 3일 만에 다시 체포되었죠. 요가로 단련된 몸과 유연성으로 여러 차례 탈주했던 그는 2018년 7월 5일 만기 출소하였습니다. 다만 요양병원에서 폭행 등 난동을 부려 다시 10개월의 징역을 선고받고 현재는 출소한 상태입니다.

3, 세 살 버릇 진짜 여든까지, 조세형

1970~80년대 대한민국에는 대도라 불린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김준성 전 부총리나 국회의원 등 부유층의 귀물과 돈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해 의적이라고까지 불렀죠. 한동안 미화되었지만, 그는 1982년 검거된 후 1983년 법원 구치감에서 탈출해 6일 동안 도주에 성공한 그의 이름은 조세형입니다. 지붕을 걷고 담을 넘으며 도주해지만 결국 총에 맞아 떨어졌죠.

이후 그는 추가적인 탈주를 감행하진 않았지만, 90년 기독교에 귀의해 98년 출소하게 됩니다. 한동안 그는 에스원 자문 위원에 경찰 행정학 강사, 교회 목사로 활동하며 개과천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옥중 뒷바라지한 여성과 결혼도 하고 늘빛선교회를 설립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도 했죠. 다만 일본으로 떠나고 도벽이 재발하면서 2000년대부터 다시 도둑질을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는 도둑이라는데 자부심을 가진 범죄자였습니다. “나는 도둑이다. 절대 강도질은 안 한다. 자신을 뭐로 보고 그러냐!”라고 한 말이 유명하죠. 이후 도둑질과 수감생활을 반복하던 그는 2019년 6월 광진구 주택 1층에 침입해 저금통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무려 81세의 나이였죠. 그렇게 그는 2019년 8월 2년 6개월 징역을 선고받고 다시 교도소로 복귀했습니다.
최찬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