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유혹>은 종영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종종 패러디 됩니다. 죽은 걸로 알고 있는 아내가 눈 옆에 점을 하나 찍고 나타났는데 그걸 못 알아보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때문에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높은 시청률 기록과 함께 ‘웰메이드 막장’이라는 아이러니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죠. 아직도 장서희 씨, 김서형 씨의 독기 어린 눈빛과 ‘왜 너는 나를 만나서~왜 나를 아프게만 해~’로 시작하는 OST가 생생하게 떠오르는데요.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요?

이야기 덕후, 30세에 작가가 되다

1971년 생인 김순옥 씨는 이화여자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89학번입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는데요. 하도 드라마를 많이 봐서 아버지가 TV 전원 콘센트에 테이프를 붙여 놨을 정도였답니다. 글을 배운 뒤로는 헌책방에 가서 세계명작동화를 사서 읽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한 로맨스 소설은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매년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꼭 최종 심사까지 가서 탈락했다는데요. 이에 소설가는 자기 길이 아니라 체념한 김순옥 작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습니다. 평범한 주부가 되어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베스트 극장 신인 작가를 뽑는다는 광고를 TV에서 보게 되고, 드라마 작가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쓴 <사랑에 대한 예의>는 극작을 배워 본 적 없는 아마추어가 단 2주 만에 완성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3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때는 2000년, 김순옥 씨의 나이 서른 살에 일어난 일입니다.

막장계의 여왕

김순옥 작가는 <오로라 공주>의 임성한 작가, <조강지처 클럽>의 문영남 작가와 함께 ‘막장 드라마 작가’의 대표격으로 꼽힙니다. 몇 개월 전 종영한 <황후의 품격>도 김순옥 작가가 집필하고 있습니다. 입헌군주제 하의 대한 제국이라는 설정에 밀회, 살인, 복수 등의 자극적인 소재를 버무린 이 작품은 캐릭터의 감정선이나 이야기 전개에 개연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흡인력이 굉장한 작품인 것만은 틀림없는데요. 최근 17%를 기록하고 곧 20%를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시청률이 그 증거입니다.

김순옥 작가의 전작들을 한 번 살펴볼까요? <아내의 유혹>을 제외하면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왔다! 장 보리>와 <내 딸 금사월> 정도가 있을 텐데요. <왔다! 장보리>는 아이가 뒤바뀐 두 가정의 이야기를, <내 딸 금사월>은 혼외 자식으로 보육원에 버려졌던 아이가 우연히 생모와 생부의 삶에 나타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역시 외도, 출생의 비밀, 복수와 라이벌 구도로 막장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죠.

이 두 작품은 배경과 소재만 조금 달라졌을 뿐, 전체적인 스토리와 인물 설정이 매우 비슷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다만 둘 중에서는 <내 딸 금사월>의 무리수가 더 심했다는 평이 압도적이죠.

끝장나는 악역들

김순옥 작가의 작품에서는 주인공보다 오히려 캐릭터 확실한 악역들이 주목을 받습니다. 그들은 시종일관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데요. 배우의 목이 쉬거나 혈관이 터져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아내의 유혹>에서 신애라 역을 맡은 김서형 씨는 각종 악행을 거침없이 행합니다. 친구인 은재(장서희)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고, 시도 때도 없이 폭행과 패악을 일삼죠. 점찍고 돌아온 은재, 그러니까 민소희에게 가정과 회사를 모두 빼앗기고 나서도 발악을 계속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김서형 씨는 화제 속에 방영 중인 <SKY 캐슬>에서의 정제되고 차가운 연기와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왔다! 장보리>는 연민정이 살렸고, 연민정 캐릭터가 배우 이유리를 도약하게 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이 드라마에서도 악역의 활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생모를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온갖 협박과 술수를 사용했던 연민정은 시청자들의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았는데요. 특히 아이가 유산되었을 때 오열하는 모습, 사랑하는 재희가 던져버린 반지를 찾겠다며 불구덩이에 손을 넣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는 시청자들이 많았습니다.

김순옥 드라마의 악역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하는데요. <아내의 유혹>의 정교빈(변우민)은 신애리와 함께 바닷물에 빠져 죽고, 연민정은 손가락 불구가 된 채 기억을 잃은 친모에게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죠. <내 딸 금사월>의 악덕 회장 강만후(손창민)는 쫄딱 망한 뒤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강만후가 저지른 범죄는 현실이라면 무기징역감인데 드라마에선 5년 형으로 끝났다’라는 비판도 나왔지만요.

막장을 쓰는 진짜 이유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에 한때는 소설가를 꿈꿨던 그녀는 왜 이렇게 심란하고 시끄러운 막장 드라마만 쓰는 걸까요?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봤을 김순옥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드라마 작가로서 대단한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거나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한다”면서 “제가 바라는 건 그냥 오늘 죽고 싶을 만큼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안 오는 외로운 할머니·할아버지들, 그런 분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특히 그녀는 병원에서 <아내의 유혹>을 시청한 환자들의 후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하는데요. “정말 아프고 희망도 없지만 <아내의 유혹>이 방송되는 40여 분간은 고통을 잊을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순옥 작가는 아픔과 외로움을 잊게 해 주는 게 막장이라 비판받는 자신의 드라마가 갖는 순기능이라고 믿는다네요.

음모와 범죄가 난무하는 과격한 내용의 드라마를 쓰지만, 실생활에서의 그녀는 준법정신 투철한 시민이자 두 아이의 평범함 엄마라고 합니다. 권선징악이 뚜렷한 플롯 때문에 아이들도 엄마가 쓴 드라마를 좋아한다는데요. 김순옥 작가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 봐 ‘저 사람들처럼 살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 준다네요. 막장은 분명 막장이지만, 욕하면서라도 결국은 보게 만드는 게 김순옥 씨가 가진 작가로서의 힘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