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정부가 2024년 상반기부터 발행할 새 지폐의 도안을 발표했습니다. 만 엔 권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5천엔 권에는 여성 교육 개척자인 쓰다 우메코, 천 엔 권에는 일본 의학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를 넣기로 정했다는데요. 이 세 명 모두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데다,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경우 대한 제국의 화폐주조권 장악을 주도했던 인물이라 논란이 이는 중이죠.

한국에서도 10만 원 권 발행이 거의 가시화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정부의 중단 요청, 누구의 얼굴이 새겨질 것이냐에 대한 국민적 합의 부족으로 무산되었죠. 만일 다시 10만 원권 발행이 구체화된다면 과연 어떤 위인의 얼굴이 지폐 한편을 차지하게 될까요? 자주 거론되는 인물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

2007년 11월, 한국은행이 10만 원권 지폐에 들어갈 인물을 발표했을 당시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 ‘뒷면에 들어가는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빠져있다’는 이유로 10만 원권 발행 작업 유보를 요청해 결국 계획은 무산되었는데요. 일각에서는 ‘대동여지도와 독도는 핑계고, 보수 성향의 정부가 김구 초상을 문제 삼아 중단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죠.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여전히 10만 원 권 인물 후보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김구 선생입니다. 그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라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경력도 있어 대표성도 충분하다는 것이 10만 원권 인물로 김구 선생을 추천하는 사람들의 의견이죠.  5만 원 권 신사임당, 1만 원 권 세종대왕, 5천 원 권 율곡 이이, 천 원권의 퇴계 이황이 모두 조선시대 인물이니, 근현대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얼굴을 넣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

근현대사 인물, 그중에서도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을 10만 원권의 주인공으로 선정한다는 전제하에김구 선생 다음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은 유관순입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죠. 18살의 나이로 천안, 연기, 청주, 진천 등의 학교와 교회에서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점, 재판 과정에서 ‘더는 독립운동을 않고 대일본제국 신민으로 살아갈 것을 맹세하라’는 회유에 당당히 맞선 점, 서대문 형무소에서 겪은 모진 고문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점 등이 독립의 과정과 의미를 되새기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사실 유관순 열사는 5만 원권에 들어갈 인물을 결정할 당시 유력한 후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사임당에게 밀려 화폐 속 위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한 네티즌이 5만 원권에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합성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뒤 국민들의 호응을  얻은 적도 있죠.

광개토 대왕

현재 화폐 속 위인들이 모두 조선시대 인물인 것이 문제라면, 근현대뿐 아니라 삼국시대, 신라시대, 고려 시대의 인물들도 고려해보면 좋겠죠. 많은 국민들이 10만 원 권의 주인공으로 희망하는 조선 이전 시대 위인에는 광개토 대왕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것은 고구려입니다. 그중에서도 최대 영토를 보유했던 것은 문자왕 때의 일이지만, 그 기반을 마련하고 고구려 전성기의 문을 연 인물은 광개토 대왕이죠. 광개토 대왕은 북쪽으로 연나라, 남쪽으로 백제를 밀어내며 영토를 확장하고 신라가 왜의 침입으로 시달릴 때 지원군을 보내 위력을 떨쳤으며, 숙신과 동부여를 복속하는 등 ‘강한 나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는데요. 광개토 대왕의 초상을 우리 화폐에 삽입함으로써 고구려사가 우리의 역사임을 중국에 분명히 보여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자 장영실

현재 사용 중인 화폐에 그려진 인물에는 국왕(세종대왕), 정치인 및 문·무인(이황, 이이, 이순신), 예술인(신사임당)은 있지만 과학자가 없습니다. 반면 해외에서는 국가나 민족, 혹은 인류 발전에 공헌한 과학자의 얼굴을 화폐에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유로화 사용 전 유럽 18개국의 지폐 107 종 중 26종에는 과학자의 얼굴이 담겨 있었습니다. 폴란드 출신인 마리 퀴리의 초상은 프랑스의 500프랑과 폴란드 2만 즈워티에 같이 등장했죠.

현재 한국 화폐에 등장하는 두 명의 학자(퇴계 이황, 율곡 이이)는 모두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입니다. 화폐의 주인공이 모두 조선 사람이다 보니 성리학자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겠지만, 과학자는 없는데 유학자만 두 명이라는 것이 뿌리 깊은 과학경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는 이들도 많은데요. 이들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과학자로 손꼽히는 장영실을 새 화폐 인물로 선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냅니다. 자격루, 앙부일구 등을 만들어낸 과학자로서의 자질은 물론이고, 노비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종 3품 관직에까지 올랐다는 점도 화폐 속 위인으로서 의미를 갖겠네요.

무산된 10만 원권 발행 계획이 언제 다시 논의될지는 불확실합니다. 현금 사용이 크게 줄어든 데다 ‘5만 원권 두 장이면 현금으로 10만 원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10만 원권 발행이 필요하느냐’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죠. 2009년 5만 원권이 도입된 이후로 307만 건에 달했던 10만 원권 수표의 이용건수가 지난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만 원권이 나온다면 현재 화폐의 인물 구성에 ‘다양성’이 조금 추가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러분 마음속의 10만 원권 주인공은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