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에서 간단히 아침이나 점심을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강남역 출구 신호등 바로 앞에 위치한 파리바게뜨 카페강남중앙점이 대표적이죠. 카페라는 이름처럼 100평 남짓한 공간이 있어 커피 한 잔과 빵을 먹으며 쉬는 직장인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평소 줄 서서 빵을 살 정도로 인기 있었던 이곳이 갑작스레 문을 닫아 이용객들이 당황하고 있다. 늘 손님으로 북적거리던 강남 분당선 파리바게뜨는 왜 사라진 걸까요?

직장인 줄 서 먹던
카페강남중앙점

파리바게뜨 카페 강남중앙점은 덕흥 빌딩 1층에 있던 점포입니다. 덕흥 빌딩은 강남역 분당선 5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대로변 빌딩인데요. 신호등 바로 앞에 위치해 많은 직장인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접근성이 좋은 데다 내부 공간을 카페처럼 꾸며 아침, 점심을 이곳에서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많았죠.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카페강남중앙점을 방문한 고객들은 ‘가장 메뉴가 많고 깨끗하고 맛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파리바게뜨만 찾아다닌다던 한 전문 리뷰어는 다른 지점보다 재료가 신선하고 샐러드 양과 질이 다른 영업점보다 많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직장인에게 인기 좋은 샌드위치류가 타 지점보다 비싸다고 지적했죠. 이외에 빵 가짓수가 가장 많다며 파리바게뜨 팬이라면 꼭 방문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폐점, 이유는

카페강남중앙점의 월 매출은 9000만 원에서 1억 2000만 원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파리바게뜨 점포 중에서도 상위권 매출입니다. 하지만 과거 2016년 강남역 11번 출구 파리바게뜨가 1억 4천만 원이라는 월세에 폐점했던 만큼 이번 폐점도 과한 월세 상승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죠. 하지만 카페강남중앙점이 위치한 덕흥 빌딩 1층이 매물로 나오지 않아 정확한 임대료를 확인하긴 어려웠습니다.

다만 3층 매물로 1층 임대료를 추정할 수 있었죠. 덕흥 빌딩 3층은 1층과 동일한 410.45㎡ 면적을 보증금 3억 4764만 월, 월 3476만 원에 임대료를 책정하고 있었습니다. 3층의 층별효용비율은 1층 100%를 기준으로 52.4%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1층이었던 카페강남중앙점의 임대료는 보증금 6억 6343만 원에 월세 6633만 원으로 추정됩니다. 프랜차이즈 전문가는 “손실이 있긴 하지만 상징성 등을 고려하면 폐점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죽음 이후 밝혀진 진짜 이유

앞서 언급했듯 파리바게뜨 카페강남중앙점은 덕흥 빌딩 1층에 입점해 있었습니다. 덕흥 빌딩은 1994년 지어진 건물로 지하 5층, 지상 16층 규모입니다. 매매가는 약 3000억 원으로 추정되죠. 전문가들은 해당 빌딩이 2020년 7월 사망한 고 백선엽 장군의 건물이라며 재산 분배 및 상속세 마련을 위해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선 전문가들은 파리바게뜨 같은 우량 임차인을 내보낸 다음 건물을 매각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 못 박았습니다. 건물 매매가 임대수익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매각을 위해 임차인을 내보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건물 명의 역시 백선엽이 아닌 그의 장남 백남혁으로 나타났습니다. 장남 백남혁은 1994년 백선엽으로부터 건물을 증여받았죠.

백선엽 장군의 사망에 따라 상속받아야 하는 분량도 이미 2010년대에 정리되었습니다. 2000년대 백선엽은 장남에게 건물 명의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데요. 장남이 이를 거부하자 5년에 걸친 소송전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덕흥 빌딩의 지분 절반이 백선엽 장군의 아내와 장남 외 세 자녀에게 넘어갔는데요. 이들은 2012년 350억 원에 지분 절반을 장남 백남혁에게 다시 매각하였습니다.

상속세도, 지분 문제도 아닌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덕흥 빌딩은 백선엽 장군 사망 1년도 전인 2019년 5월부터 재계약, 임대차 계약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상 임차인 퇴거를 동보한 셈이데요. 중개업자는 “위치가 워낙 좋아 재계약은 물론 신규 임대 문의도 계속 들어왔다”라며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습니다.

덕흥 빌딩과 백선엽

덕흥 빌딩 건물주는 백선엽은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입니다. 광복 후 국군 1사단장으로 임명받아 6.25 전쟁에서 활약했죠. 그는 대한민국이 부산까지 밀린 시기 결사항쟁해 부산을 지키고 평양에 가장 먼저 입성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 이력으로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어 있죠.

덕분에 고 백선엽의 대전 현충원 안장은 정치 문제로 번지기까지 했습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한쪽은 그를 매국노로, 한쪽은 전쟁 영웅으로 칭했죠. 미국은 그를 살아있는 전설로 예우하는 한편 전후 가장 부패한 장군이라 평가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