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가게 운영을 포기하고 있는데요. 이태원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홍석천 역시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를 폐업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가수 강원래까지 이태원에서 운영하던 가게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이 가게는 수많은 스타들을 양성해낸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오늘은 강원래가 운영을 포기했다는 ‘문나이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춤꾼들의 성지,
핫플레이스 ‘문나이트’

이태원의 문나이트는 1980년대부터 유명한 클럽이었습니다. 원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클럽이었는데요.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내국인들도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국내외 춤꾼들이 모이는 댄스의 성지가 된 것이죠. 해외의 댄스 문화를 배우기 위해 유명한 춤꾼들이 문나이트를 찾았는데요. 그 결과, 이곳은 단순히 춤을 추는 클럽이 아닌 자신의 춤 실력을 과시하고 새롭게 개발한 춤을 선보이는 문화 공간이 된 것이죠.

덕분에 ‘국내의 유명한 춤꾼들은 모두 문나이트에 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는데요. 이 춤꾼들은 문나이트에서 서로 정보 공유도 하고 친분도 쌓으면서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크루’와 비슷한 팀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팀들은 전문적인 댄서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이들이 결국 연예계에 진출해 유명 가수의 댄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팀이 ‘프렌즈’입니다. 코요테의 김종민이 속해있었고 가수 엄정화의 백댄서로도 유명한 팀이었습니다.

8090 스타들의 등용문

춤꾼들의 성지로 유명해진 문나이트는 곧 연예계에까지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이 신인 발굴을 위해 문나이트를 찾게 된 것이죠. 문나이트에서 유명세를 떨친 춤꾼들이 댄스 가수로 데뷔하거나 대형 기획사의 안무 팀으로 들어가는 등 문나이트의 춤꾼들은 대거 연예계로 진출했습니다. 당시 국내 가요계는 댄스 장르가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였는데요. 문나이트 출신의 춤꾼들이 이런 성장의 중심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문나이트 출신의 대표적인 연예인으로는 국내 가요계의 댄스음악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현진영과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 불리던 박남정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양현석, 듀스의 이현도, 김성재, 룰라의 이상민, 신정환, 터보의 김정남, 클론의 구준엽과 강원래 그리고 박진영 등이 문나이트에서 춤을 추던 가수들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다시

춤꾼들의 성지였던 문나이트였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미 소문난 춤꾼은 연예계로 데뷔했고, 춤 좀 춘다는 새로운 춤꾼들은 문나이트가 아닌 연예 기획사나 오디션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죠. 이와 함께 국내 클럽 문화가 변화하면서 문나이트는 끝내 문을 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나이트를 다시 살려낸 것이 문나이트 출신 댄스가수, 클론의 강원래였습니다. 강원래는 지난 2018년 춤꾼들의 성지였던 문나이트를 새롭게 오픈하게 됐는데요. 이태원의 문나이트 자리에 라운지 펍인 문나이트를 오픈하면서 옛 영광을 다시 누리기를 바랐었죠. 강원래는 오픈 당시 “문나이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겠다”라며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타격에
‘생사기로’에 놓여

강원래가 문나이트를 새롭게 오픈하며 다시금 문나이트가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나 싶었지만 강원래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지난 5월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는데요. 이를 통해 이태원 클럽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생기면서 강원래의 문나이트 역시 큰 타격을 받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강원래는 본인과 직원들이 모두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인증하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코로나19의 영향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강원래는 본인의 SNS를 통해 “문나이트를 인수하실 분을 찾는다”라며 문나이트 운영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강원래는 SNS를 통해 침체돼 가는 이태원에 대한 응원과 코로나19 방역에 힘쓰고 있는 모습 등을 보여주었는데요.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강원래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