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점점 고교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추세이지만, 명문 고등학교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기대는 여전합니다. 소위 스카이나 의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는 명문고로 분류될 확률이 높겠죠. 교육열 높은 강남 8학군 내 학교들,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외국어 고등학교나 과학 고등학교, 각 지역의 자사고 등은 명문대 진학률이 높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 전북 교육감이 “상산고에서는 전교생 360명 중 275명이 의대를 간다”고 발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교생의 4분의 3 가까이 의대에 진학하는 건,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일반고 전환 위기에 처한 상산고


전주 상산고등학교의 자율형 사립고 지정이 취소되었습니다. 전북교육청이 실시한 재지정 평가에서 총점이 미달되었기 때문이죠. 사실 상산고가 받은 점수는 79.61점으로, 교육부가 제시한 기준 점수인 70점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다만 전북교육감 재량으로 강화한 80점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죠.

학생·학부모들의 반발과 함께 전북교육감의 직권남용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김승환 전북 교육감은 “70점은 전북의 일반 고등학교도 쉽게 넘길 수 있는 평이한 기준”이라며 “제1기 자사고로서 그렇게 당당하다면 80점 정도는 큰 부담을 안 가졌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드러냈는데요. 또 이 사안에 관해 정치권의 압력이 있으면 SNS에 낱낱이 공개할 예정이며, 교육부 장관이 재지정 취소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권한 쟁의 신청 등 법적인 조치도 불사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상산고=의대 사관학교?


상산고가 논란의 한 가운데 서자, 한 재학생은 자신의 상산고 재학 경험을 공유하고 나섭니다. ‘상산고는 다양성 없는 의대 사관학교’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죠.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발표한 보도자료 속 그의 증언에 따르면 상산고는 ‘전국에서 모인 인재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열린 교육의 장이라고 홍보하지만 그 안에서는 다양성을 찾기 힘들며, 의대 진학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중산층 가정 상위권 학생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또한 ‘상산고 학생들 중 다수는 경쟁과 대입 압박에 상처받고 패배감을 느끼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삼수로 명문대에 진학했는데 의대에 가려고 다시 반수를 하는 친구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까지 하는 건, 상산고라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패배감과 경쟁의식의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이어 “교육개혁의 첫 단추가 바로 특권학교 폐지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습니다.


360명 중 275명이 의대를 간다?


김승환 전북 교육감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탭니다. 그는 지난 6월 26일 있었던 국회 교육위원회 현안 보고에서 “상산고 한 학년 숫자가 360명인데 재수생 포함해 275명이 의대로 간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발언했죠. 지방 의대에 합격하면 스카이도 포기하고 진학한다는 학생이 많을 정도로 경쟁이 심한데, 한 학교에서 한 해 275명을 의대에 보내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교육감이 밝힌 이 수치는 사실과 차이가 있습니다. 28일 상산고가 밝힌 바에 의하면 올해 상산고 졸업생은 386명이며, 이들 중 의대에 진학한 학생은 48명뿐이죠. 재수생과 삼수생, 치대와 한의대를 포함해도 총 178명에 그칩니다. 박삼옥 상산고 교장은 김 교육감이 언급한 수치는 재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졸업생들이 게시판에 붙인 내용에서 나온 것이며, 학교 측의 자료는 아님을 강조했죠. 김 교육감이 이 같은 수치를 접하게 된 것은 ‘입시 지도를 제대로 하라’는 민원과 함께 해당 내용이 붙어있는 게시판 사진이 교육청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라네요.

차라리 자사고 제도 폐지하라는데…


과열된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자사고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기준을 높인다는 취지는 좋지만, 과연 이런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부 학부모들은 “지역 자사고를 다 없애면 어느 부모가 아이들을 지방에서 키우고 싶겠냐”면서 자사고 지정이 줄줄이 취소되면 서울, 그것도 강남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죠.

상산고를 설립한 것은 <수학의 정석> 저자로 잘 알려진 홍성대 이사장입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한 이번 사태에 대해 홍성대 이사장은 “처량하고 괴롭지만 사법부가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는데요. 이어 “자사고가 한국 교육의 폐해라면 차라리 법을 개정해 자사고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면서, “자사고 제도가 엄연히 법에 존재하는데, 없애겠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평가를 하는 건 정부를 철석같이 믿고 투자해온 학교를 골탕 먹이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네요.

275명이라는 의대 진학 학생 수는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지만, 역대 수능 만점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 공동 2위에 랭크되고 ‘의치한’ 진학 실적 톱에 등극하는 등 상산고가 훌륭한 진학률을 보여온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한 졸업생의 말처럼 과도한 입시 경쟁의 결과일 수도, 상산고 만의 자율적이고 효과적인 교육 방식으로 얻어낸 결과일 수도 있겠죠. 경희고, 동성고, 배재고 등 서울시내 자사고들의 재지정 평가가 한창인 지금, 과연 이들 학교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