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전쟁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지만, 휴전국인 만큼 항상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안타까운 운명을 가진 나라죠. 따라서 한국은 유사시에 원활한 작전 수행을 하기 위해 예전부터 비밀리에 군사시설을 건설해왔습니다.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비롯한 각 부서 참모 총장들은 ‘이곳’으로 향해서 작전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자주 보셨을 것 같은데요. 최근에는 1급 비밀이었던 일부 공간이 국민에게 개방되고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의도에 묻힌 비밀공간

오늘 소개해드릴 비밀 공간은 바로 ‘벙커’입니다.  매일 수백만 명의 사람이 오고 가는 여의도 지하에도 비밀 벙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벙커는 여의도 공원 건너편 버스 환승센터 근처 지하에 숨겨져 있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군의 날’행사 때 이곳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 단상 바로 아래 5m 깊이에 무려 871m² 규모의 벙커를 만든 것이죠.

이곳은 2005년 서울시가 버스 환승센터를 짓기 위해 조사하던 중 발견했습니다. 당시 서울시가 벙커의 정체를 알기 위해 과거 문서를 뒤져봤지만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죠. 발견됐을 때 30cm 정도 높이로 물이 차 있었지만 하얀색 타일과 소파, 열쇠 박스와 서류까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또한 벙커는 180평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와 개인용 화장실, 샤워장도 따로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천장과 바닥, 벽체는 모두 50cm 두께의 단단한 콘크리트로 감싸져 있었고, 서울시가 조사를 위해 구멍을 뚫어보니 조그만 틈새도 없는 조밀한 콘크리트가 나타났습니다.

이는 적군의 폭격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제작연도를 1976년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위성 자료를 확인해본 결과, 1976년 11월에는 공사 흔적이 없지만 1977년 11월 사진엔 벙커 출입구가 눈에 띄기 때문이죠.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숨져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가는 등 극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한반도를 덮쳤죠. 기록이 없기 때문에 벙커의 정확한 건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어진 연도를 통해 북한의 위협이 건설의 주된 목적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공호를 딱히 활용할 방법이 없던 서울시는 발견된 지 10년 동안 벙커를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이후 서울시는 일반인들이 쉽게 출입할 수 없는 벙커의 구조상 문제점을 해결하고 석면 등을 철거한 뒤 2015년 10월 1일 기자들에게 내부 출입을 허용했죠. 최근에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해서 전시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픈 기억이 묻힌, 경희궁 방공호

경희궁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많은 수난을 겪었죠. 조선시대 많은 왕들이 거쳐간 경희궁은 일제강점기 시대 대부분 철거되거나 이전되었고, 일본인들이 학교 터로 사용하며 궁궐의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경희궁 방공호는 일제강점기 시대 한국의 비참함을 그대로 간직한 지하시설입니다.

경희궁 방공호는 1944년에 완성된 지하시설물로, 겉으로 볼 때는 평범한 주차장처럼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히 대피시설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죠. 방공호는 본래 공습을 피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내부에 별다른 편의시설이 없습니다. 그러나 경희궁에 지어진 방공호는 화장실, 세면대, 환기시설과 조명시설 등이 모두 갖춰져있습니다.

이 방공호가 지어질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는데요,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함대가 전멸당하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은 공습을 피하기 위해 경희궁 방공호 건설을 서두르게 됩니다. 이 방공호를 통해 경희궁 근처 경성중학교를 이용해서 공습을 피하려고 한 것 같고, 또 하나는 이곳이 광화문에서 6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중심지이기 때문에 이곳에 건설을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건설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체신부 직원은 ‘이곳이 경복궁 앞에 있던 조선총독부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증언을 남겨 결코 단순한 방공호가 아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방공호 옆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세워졌습니다. 그동안 방공호는 활용할 방법이 없어 수십 년간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2017년부터는  일반인들에게 방공호를 개방하고, 일제 강점기부터 오랫동안 묻혀있던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죠.

방공호 건설이 의무,
주한 스위스 대사관

지난해 5월,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종로구 송월동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국내에 있는 대사관 중 처음으로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물로 주목을 받았었죠. 아름다운 외관 외에도 화제가 된 것은 대사관 지하에 있는 방공호 때문입니다. 대사관에 방공호라니, 일각에서는 ‘북한 핵 공격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라는 추측도 있었죠.

하지만 방공호는 스위스 국내법상 의무시설입니다. 스위스 대사관은 스위스의 땅이기 때문에 스위스 국내법이 적용되는 것이죠. 따라서 북한의 위협에 상관없이 건축을 해야만 했습니다. 대사관 관계자는 “스위스 민방위법은 건축물을 설계할 때 방공호 건축을 의무화하고 있다”라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스위스 대사관을 가도 방공호가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스위스의 민방위법은 1963년 통과됐습니다. 이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전 세계가 위험에 빠졌던 냉전시대죠. 스위스는 영세 중립국으로서 핵 전쟁 등 전시에 대비해 이러한 법령을 만든 것입니다. 그 결과 스위스에는 주민 거주지와 병원 등 공공시설에 약 30만 개의 방공호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또한 5000개 이상의 공용 방공호도 따로 설치돼있죠. 한국에서는 이 방공호를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