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면서 가장 황당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진지하게 나라의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갑자기 얼굴에 내려앉은 파리 한 마리 때문에 당황한 기자의 이야기나 심각한 소식을 전달한 후 뜬금없이 웃음이 터진 앵커의 사연, 모두 한두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런 일들은 미처 예상치 못한 ‘방송사고’에 가깝습니다. 이와 달리 큰맘 먹고 준비한 기획으로 뉴스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가 된 기자도 있는데요. 게임 좀 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기억하고 있을 그 이름, 바로 MBC 유충환 기자입니다.

게임의 악영향을 증명하는 방법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밤새워가며 거의 다 완성했는데, 저장할 새도 없이 오류로 인해 프로그램이 종료되어 버린 아찔한 경험은 다들 한 번씩 있으실 겁니다. 만약 한창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컴퓨터 전원이 갑자기 꺼진다면? 과제나 업무보다 애통함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오늘 소개할 유충환 기자는 한 명도 아닌 수십 명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동시에 유발합니다. 도대체 그는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요?

유 기자는 지는 2011년, 잔인한 게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보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게임의 영향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란, 서울의 한 PC방을 찾아가 갑자기 전원을 내리는 것이었죠. 평화롭게 게임 중이던 청소년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하실 텐데요. 유 기자는 거세게 항의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렸다”는 코멘트를 더합니다. 게임 중인 컴퓨터를 껐다고 분노해 날뛰는 걸 보면 폭력적인 게임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이 보도의 핵심이었죠.

빗발친 항의 세례

이런 억지스러운 내용의 뉴스에 가만히 있을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아니죠. MBC 뉴스데스크 시청자 게시판에는 유 기자와 MBC 뉴스에 대한 항의의 글이 쇄도합니다.  ‘기자님이 기사를 다 썼는데 누가 컴퓨터를 끄면 화가 나겠냐 안 나겠냐’, ‘유충환 기자님 고소하겠다’ 등 시청자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제목들이 눈길을 끌었죠.

해당 PC방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폭력적인 내용의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도 없고, 게임이 아니라 다른 업무를 보고 있는 사람들, 과제 중인 학생들도 있을 수 있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실험에 대한 사전 설명 및 피실험자의 동의도 얻지 못해 윤리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논란이 심해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강도 높은 경고 조치를 취했습니다.

유 기자의 변

MBC 뉴스데스크 측의 해명에 따르면, 그 실험은 심리학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전문가의 말대로 실험하고 방송한 것뿐인데 모든 비난이 자신에게만 쏟아지자 유충환 기자는 “다소 무리하게 진행된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심정을 드러냈죠.

그는 <미디어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폭력 게임 중일 때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고, 게임을 하고 난 뒤 심리 테스트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통해 폭력 게임과 아이들의 폭력성의 상관성을 도출한 것”이라며 “해당 실험은 여러 근거 가운데 하나로 한 실험이었는데, 다소 정밀하진 않았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인터뷰와 연구 결과도 있었기 때문에 반영했던 것”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 전원도 내려주실 건가요

PC방 전원 내리기 사건은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지만, 지난해 유충환 기자는 다시 한 번 네티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지난 5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8명의 ‘남측 공동취재단’ 단장이 다름 아닌 그였기 때문이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네티즌들은 ” 북한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핵실험장의 전원을 내려봤습니다”거나 “잘못 알고 발사 버튼을 누르지는 않겠죠?”라며 2011년 PC방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물론 풍계리 핵 실험장은 유충환 기자의 특별한 기여 없이 절차에 따라 폐쇄되었고, 취재단 전원은 안전하게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는 했지만 이 사건을 통해 유충환 기자는 7~8년 후에도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레전드가 되었죠. 2011년 당시에는 극렬한 분노를 표현했던 네티즌들도 지금은 웃으면서 이 일련의 사건들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은 유 기자의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 궁금해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무리수 없는 담백한 기획이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