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김연경은 각 분야 정점을 찍은 선수입니다. 두 사람은 실력뿐만 아니라 남다른 심성과 외모로 대중을 사로잡았는데요. 그보다 앞에서 스포츠 스타로 비인기 종목을 단박에 끌어올린 여성이 있습니다. 그는 중국이 휩쓸던 종목에서 금메달을 연달아 따내며 한국 스포츠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는데요. 한국 위상을 드높였던 이 여성이 선택한 남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탁구계 전설, 현정화

현정화는 한국 탁구계의 전설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한국 최초로 중국을 이기고 탁구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죠. 그는 1969년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탁구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계성여자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 1985년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죠.

국가대표가 된 현정화는 남다른 미모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사슴같이 큰 눈에 유난히 오뚝한 코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코는 굳게 다문 입과 함께 현정화의 트레이드 마크로 ‘피노키오’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덕분에 1993년에는 한국화장품 템테이션의 모델로 활동하기까지 했죠.

현정화는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서울, 하계 올림픽, 독일, 지바, 예테보리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냅니다. 특히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 대회에선 북한 선수 리분희와 함께 세계 최강국인 중국을 꺾고 우승했죠. 이 사건은 2012년 영화 ‘코리아’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단식, 복식, 혼합복식을 석권한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올랐죠.

강호동과 열애설까지

이처럼 한국 탁구를 세계 1위 자리에 올려둔 현정화였지만 25세인 1993년, 예테보리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한 것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선수로서 기량이 떨어진 것도 아니라 많은 팬들이 그의 은퇴를 아쉬워했는데요. 1999년부터 한국 마사회 소속 플레잉 코치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2009년 결혼한 뒤에는 대한민국 탁구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2010년 아시안 게임 대표팀 지휘를 맡았죠.

결혼 전 현정화는 두 차례의 스캔들을 겪기도 했는데요. 가장 먼저 터졌던 스캔들은 씨름 선수 강호동과의 스캔들이었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직접 만난 것은 아니었고 씨름 스타인 강호동과 탁구 스타인 현정화가 결혼하면 멋지지 않겠느냐는 말이 와전된 것에 불과했죠.

이어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남규와 열애설이 터집니다. 두 사람은 같은 국가대표 선수로 복식 등 훈련에서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데요. 두 사람이 허물없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열애설이 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부산 출신으로 10살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친한 것뿐이라고 전했죠. 특히 현정화는 유남규는 절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며 열애설을 극구 부인했습니다.

현정화가 선택한 남편은

두 번의 스캔들이 있었지만 현정화가 실제로 연애한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요. 바로 전 탁구선수였던 김석만입니다. 김석만은 현정화보다 1살 연하의 탁구 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탁구를 시작해 탁구 명문 한일중학교로 진학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죠. 대우증권에 입단했으나 93년 탁구계에서 은퇴하고 영업사원으로 전향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고등학생인 87년 훈련원에서 만났습니다. 당시 김석만은 현정화의 첫인상을 “아주 쌀쌀맞게 느껴졌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면 현정화는 “눈에 들어왔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았다”라고 전했죠. 두 사람은 다른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서서히 친해졌는데요. 물 흐르듯 연인이 되었다며 연인이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현정화는 “힘든 순간마다 김석민이 옆에 있었다.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압구정 근방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사랑을 키워갑니다. 두 사람은 자연히 결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현정화 어머니가 “탁구 관계자와 너보다 못난 사람은 안된다. 차라리 혼자 살아라”라며 수년 동안 두 사람의 결혼을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수년 동안 결혼도 못 하고 지내게 됩니다.

결혼 후 근황

두 사람은 결혼을 추진한 뒤 수년 동안 어머니를 설득합니다. 중간에 IMF 외환위기로 김석만이 증권사에서 해고되어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요. 이후 포스데이타 감독직 제의가 와 기사회생할 수 있었죠. 이후 김석민이 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며 설득한 끝에 1998년 결혼을 허락받았습니다. 현정화는 인터뷰에서 10년 만에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정화와 김석만은 현재 슬하에 두 아이를 두고 있습니다. 이중 장녀인 김서연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탁구 선수로 교보생명컵 꿈나무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는데요. 2013년부턴 김석만과 두 아이 모두 미국에서 유학 생활 중입니다. 와중에 2014년 한국에 있던 현정화가 음주운전 사고로 물의를 빚기도 했죠. 현재는 마사회 소속으로 미래 탁구선수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