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코미디언’이라는 말보다 ‘개그맨’, ‘개그우먼’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 겁니다. 정확한 영어 표현은 아니지만 ‘직업적 희극인’이라는 의미가 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이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전유성 씨입니다. 1세대 개그맨으로서 그가 후배들에게 미친 영향은 굉장하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후배 사랑으로 소문난 전유성 씨의 인생, 그리고 근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개그콘서트의 아버지 전유성


전유성 씨는 코미디언이 아닌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서라벌 예대 연극 연출과를 졸업한 후 정극 배우를 지망했지만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MC 겸 코미디언 ‘후라이 보이’ 곽규석 씨의 방송·공연용 원고를 맡으며 경력을 시작했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전유성 씨는 방송국에 몰래 들어가 곽규석 씨를 붙잡고 “대본을 써드리겠다”고 막무가내로 제안했다는데요. 이어 “어릴 적 친구들 사이에서 ‘후라이보이2’로 불렸던 게 각인되었던가 보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개그맨’이라는 단어가 탄생해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데에는 전유성 씨의 영향이 큽니다. 대학 시절 배운 연극 용어 ‘개그’를 차용해 스스로를 ‘개그맨’으로 지칭했으며, PC 통신 시절 아이디 역시 ‘gagman1’ 이었죠. ‘개그콘서트’ 약시 그의 제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파일럿 형식으로 1회 방영된 개콘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후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전유성 씨는 ” 개콘은 컬투, 백재현, 김미화 등과 함께 만들었다”며 후배들에게 공을 돌리기도 했죠.

이영자부터 신봉선, 이문세와 한채영까지


사실 그는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빵빵 터지는 유형의 개그맨은 아닙니다. 직접 만든 개그콘서트의 코너 ‘전유성의 개그 클리닉’ 역시 그리 오래가지 못했죠. 전유성 씨의 개그는 한 번 더 곱씹었을 때 은근히 웃긴 면이 있는데, 빠른 호흡으로 돌아가며 즉각적으로 웃음을 줘야 하는 TV 개그 프로그램에는 잘 맞지 않았던 겁니다.

그에게는 재능 있는 개그맨을 알아보는 눈이 있습니다. 전유성 씨가 코미디언 이영자 씨를 TV 무대에 데뷔시킨 일화는 유명한데요. 야간 업소 무대에서 손님을 휘어잡는 이영자 씨의 카리스마를 본 그는 방송 일을 제안했고, 이영자 씨는 업소 일을 정리하고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죠. 전유성 씨는 “4개월 정도 잔소리하고 데뷔시켰는데, 3~4주 만에 스타가 되었다”며 이영자 씨에 대한 흐뭇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후배 양성에 본격적으로 힘을 쏟기도 합니다. 2001년 하반기 한 기업의 후원을 받아 경상북도 청도군에 ‘코미디 시장’이라는 개그맨 양성 교육단체를 만들었고, 2011년에는 코미디 시장 전용 극장 ‘전유성의 코미디 철가방 극장’을 개관해 지난해까지 공연을 이어왔죠. 박휘순, 신봉선,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김민경 등이 코미디 시장을 거쳐 데뷔한 케이스입니다. 이런 경력 덕분인지,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소속 아이돌 중 예능 쪽으로 진출을 희망하는 멤버를 전유성에게 보내 특훈을 시키기도 하는데요. 김희철, 이특, 신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죠.

개그맨 후배들만 발굴하고 양성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문세, 김현식 씨 등 실력 있는 가수는 물론 배우 한채영 씨, 마술사 최현우 씨도 전유성 씨의 눈에 띄어 데뷔한 케이스인데요. 고 김현식 씨가 음악다방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본 그는 “너는 음악다방에서 노래부를 재능이 아니야. 정말 가수로 나가면 대박일 거다”라며 데뷔를 적극 권유했다고 하네요. 한채영 씨의 경우 미국에서 살다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우연히 전유성 씨가 운영하던 가게에 들렀다 연예계 진출을 제안받았다고 합니다.


다수의 베스트셀러 출간한 아이디어 뱅크


전유성 씨는 소문난 아이디어 뱅크입니다. 공연이나 방송을 위한 개그를 짜는 것 외에, 일상 전반에 걸친 남다른 아이디어로 주목을 받은 사례도 많은데요. 심야 통행금지가 사라질 무렵에는 심야 볼링장과 극장 등의 신사업을 고안했고, 1999년에는 돈벌이가 될 만한 참신한 사업 아이템부터 기발한 제품 콘셉트, 톡톡 튀는 상호와 광고 카피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아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를 출간했죠.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 담긴 모든 아이디어는 아무나 마음대로 써먹어도 된다’는 경고문을 책에 표기했다는 점입니다. 머릿속에서 샘솟는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여러 사람과 나누려는 전유성 씨의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죠.

1997년 나온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SM 이수만 대표로부터 ‘앞으로는 컴퓨터 모르고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그는,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컴퓨터 조작을 해보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담은 해설서를 쓰게 되었는데요. “초보자용이랍시고 나온 책들 중에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어서” 직접 썼다는 이 책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장까지 받습니다.

지금까지 전유성 씨의 데뷔와 경력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올해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 ‘전유성의 쑈쑈쑈-사실은 떨려요’를 성공적으로 마친 전유성 씨는 현재 JTBC ‘유학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 중입니다. 전유성 씨 외에 시니어 모델 김칠두, 셰프 이연복, 배우 서은수 씨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지중해 섬나라 ‘몰타’로 떠나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평균 연령이 65세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죠. 전유성 씨는 “젊었을 때 하고 싶었는데 살다 보니 못 했던 것들은 지금 시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소감을 밝힌 바 있는데요. 낯선 곳에서의 영어 공부는 순조롭게 이어질지, ‘영어로 세계인을 웃기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