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광화문을 빛으로 물들였던 촛불집회, 아직 생생히 기억나시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기 때문에 한국인들 스스로도 자부심이 대단했고, 외신들도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요지로 이를 보도했죠. 하지만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이 기계적인 응답만 내놓는 시간이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프렌치 스타일로 가야 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프렌치 스타일이라면 보통 프랑스식 인테리어, 패션 혹은 라이프 스타일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여기서 말하는 프렌치 스타일이란, 혁명으로 공화정을 이룩한 프랑스의 과격한 시위 스타일을 일컫습니다. 

최근 화제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던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만 보더라도, 프랑스 국민들은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때 적극적인 것을 넘어 다소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특히 그 대상이 정부나 기업처럼 권력의 주체라면, 모든 구성원이 똘똘 뭉쳐 ‘저래도 되나’싶은 지경까지 일을 몰고 가죠. 2009년부터는 심지어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납치하는 노동자들도 등장합니다. 사장을 납치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무시무시한 소리일까요?

보스내핑의 시작


때는 200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 남서부의 노동자들은 소니 프랑스의 CEO와 인사부서 디렉터를 납치·감금합니다. 요구 조건은 일시 해고된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올려주고 퇴직 조건을 개선하라는 것이었죠. 그들은  감금 장소의 입구를 봉쇄하고, CEO가 해고 노동자들의 퇴직 조건 재협상에 동의할 때까지 그를 인질로 잡았습니다. 

파리 남쪽의 도시 피티비에(PiThiviers)에 위치한 3M 소유의 제약회사에서도 ‘해고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잔류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대표를 사무실에 가두는 일이 발생하죠. 감금에 동참한 노동자들은 ‘공격적으로 나갈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행동만이 자신들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죠. 또 그들은 감금된 자신의 보스에게 식사로 벨기에식 홍합요리와 감자튀김을 제공했다고 하네요.

한 번 시작된 사장 납치의 물결은 급속도로 다른 기업들로 퍼져나갔는데요. 캐터필러, 도요타, 휴렛패커드 등 글로벌 기업의 프랑스 사업장에서 연이어 경영진 납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이를 지칭하는 말도 등장하죠. 사장이나 상사를 뜻하는 보스(Boss)에 납치라는 뜻의 키드내핑(Kidnapping)을 결합해 ‘Bossnnaping’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합니다.

모의 보스내핑까지 등장


2009년, 영국의 가디언 지에는 조금 독특한 보스내핑 사진이 올라옵니다. 굳은 표정의 직원들과 겁에 질린 보스의 얼굴 대신,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채 끌려가고 끌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프랑스에서 보스내핑 당한 영국인 대한 기사를 준비하던 기자 에밀리 윌슨은 조금 더 흥미로운 기획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죠. 이때 한 동료가 아이디어를 냅니다. ‘우리가 직접 우리 보스 중에 한 명을 납치해보자’는 것이었죠. 대신 양질의 음식과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에밀리도 기발한 생각이라며 찬성했지만, 생각해볼수록 이 계획에는 문제점이 많았습니다. 상사를 어떤 방식으로 유인해 잡을지, 그가 당일 사무실에 출근을 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고민하던 그녀는 선배 기자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선배는 ‘그건 아주 나쁜 생각이고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답하죠.  

자기 자리로 돌아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에밀리에게, 교열 담당 기자 하나가 찾아옵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개인적인 문제가 있으니, 들어봐 달라고 부탁하죠. 그녀가 요청한 상담 장소는 계단 옆의 으슥한 소파 자리였습니다. 그녀를 믿고 순순히 따라간 에밀리는 순식간에 동료들에게 붙들립니다. 상사를 보스내핑 할 생각에만 골몰하던 그녀가 보스내핑의 대상이 된 것이죠.

교열 담당 기자들의 요구 조건은 이러했습니다. ‘교열 기자들에게 적절한 신뢰를 보일 것, 차와 케이크를 제공할 것, 스타일 섹션에 본인의 사진을 제공할 것, 오늘 사건에 대한 기사를 작성할 것, 트위터에 가입할 것, 법정 공휴일에 모든 스태프들의 휴가를 보장할 것.’ 감금된 에밀리는 처음에는 손이 떨리고 당황했으나, 이런 일을 꾸미던 게 원래는 자신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곤 금세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고 합니다. 더한 요구를 했어도 다 들어줬을 텐데, 너무 합리적인 조건만 내걸어서 다행이었다네요. 

대통령까지 나서다


이렇게 재밌는 소동으로 끝나는 보스내핑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임원진이 감금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프랑스에서는 대통령까지 나서 연설을 하기에 이르렀죠.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회사 대표를 감금하거나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며 “법질서가 있는 만큼 경영자 감금 사태가 계속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며 엄중한 경고를 보냈죠. 그때까지 프랑스 경찰은 보스내핑에 대해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소니, 3M 사태 때도 ‘노사 간에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는 태도로 일관했죠. 하지만 보스내핑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통령이 나서 보스내핑이 엄연한 범법행위임을 알리고, 공권력의 개입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했던 겁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들은 노조 측에 더 깊은 공감을 보였습니다. 여기에는 당시의 경제 상황과 프랑스 국민성이라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요. 2008년 미국 발 경제 위기로 인해 전 세계 경기가 위축되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정당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시위나 파업, 노동 쟁의 등은 프랑스인들 일상에  이미 자연스럽게 스며든 일이기도 했죠. 1789년부터 이어진 유구한 저항의 역사를 DNA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돌아온 납치 행각


대통령이 연설까지 하고, 경제사정이 차차 나아지기 시작하자 보스내핑의 유행도 조금씩 주춤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잠시 나아졌던 사정이 다시 급속도로 악화되며 ‘더블 딥 현상’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다다르자 보스내핑도 프랑스에 귀환했죠.  

미국계 기업인 굿이어 타이어의 프랑스 사업장은 2008년 이후 경영난에 빠졌고, 인수자를 물색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아 2014년에는 결국 공장 폐쇄를 결정해야 했는데요. 이에 따라 1173명의 노동자가 실직의 위기에 내몰리고,  북부 프랑스의 굿이어 타이어 공장 노동자들은  더 높은 퇴직금을 요구하며 임원 2명을 감금하죠. 사르코지의 엄중했던 경고가 무색하게, 경찰들은 이번에도 개입을 미루고 간부들은 만 하루가 지나서야 풀려나게 됩니다. 

2015년에는 보스내핑은 아니지만 유사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번에는 여러분에게도 익숙한 이름일 텐데요. 바로 프랑스 국적기 ‘에어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죠. 에어프랑스 인사 담당자인 자비에 브로세타가 셔츠가 모두 찢긴 채 넥타이만 걸치고 철망을 넘어 도망치고 있는 사진이 2015년 10월 6일,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등 세계 주요 신문에 실립니다. 조종사 등 2천900명의 직원을 감원하는 구조조정 계획에 분노한 노조 구성원들이 들이닥치자 놀란 임원들이 자리를 피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이번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나서 폭력행위를 비판했고, 사건에 가담한 이들은 재판에 넘겨져 주동자들은 3~4개월의 징역을, 다른 열 명은 500유로의 벌금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