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5년이 지났지만 아픈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이나 유적지들이 우리나라 여러 곳에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부산의 ‘비석문화마을’, 일본이 용산을 철도기지화하기 위해 지은 건물인 ‘용산 철도병원’, 일본 영사관 용도로 지어 사용하던 목포 근대 역사관 본관 등이 있죠.

그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전시해 놓은 공원이 있어 이목을 끕니다. 바로 해방 50년 만에 철거된 조선 총독부 건물인데요. 철거 과정에 발생된 부재들이 천안 전시공원에 전시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습니다. 당시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져 압도적 위용을 자랑했던 건물의 철거 후 모습은 어떨까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경복궁을 다 가리는 크기

일본강점기, 일본은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광화문 한복판에 압도적 규모의 조선총독부를 짓습니다. 당시 조선 제1대 총독이었던 부이만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건축한 조선총독부 청사였는데요. 백성들이 임금이 있던 궁을 보지 못하도록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경복궁을 다 가릴 정도로 크게 지었습니다.

고층건물이 없었던 당시 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물이었는데요. 총독부 청사의 신축 공사는 처음에는 5개년 계획과 300만 엔의 예산으로 시작하였지만 두 배가 넘는 675만 엔의 예산이 소요되었으며 완공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심지어 공사 과정에서 광화문이 철거되기도 했고 5,000여 개에 이르는 경복궁 내 전각들 중 상당수가 사라졌는데요. 그것도 모자라 경복궁 전각들을 경매의 매물로 내놓아 매각하면서 총독부 건물의 건축비로 충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926년 완공된 총독부 신청사는 당시 일본의 본토와 식민지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으며 동양 최대의 근대식 건축물이었습니다. 무려 9,600여 평의 건물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로 기둥 사이의 벽을 채우고 외부를 화강석으로 마감한 위에 돔 모양의 중앙탑을 얹어 완성했죠. 내부에는 일본 국화인 연꽃을 상징하는 연화 무늬를 새겨 넣어 식민지 지배 기구로서의 권위를 강조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하실 방마다 두께 15cm의 육중한 철문을 단 후 여기에 나무와 모래를 넣어 철저한 방음을 갖춘 고문실까지 만들었죠. 이렇듯 일제 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뒤 중앙청이란 이름으로 정부청사로 사용됩니다. 1986년에는 청사의 개보수 작업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관했죠. 젊은 세대들은 심지어 이 건물이 조선총독부였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철거와 유지, 대립된 의견

그렇게 조선 총독부 청사는 광복 이후에도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버젓이 경복궁을 가린 채 서있었는데요. 사실 건물 철거에 대한 의견은 이승만 전 대통령 때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철거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 등의 문제로 줄곧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철거를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일제의 침략을 상징하는 건물을 그대로 둠으로써 역사교육의 공간으로 쓰자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건물 철거가 정식 결정되었는데요. 광복 50주년이었던 1995년 정부는 옛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 철거를 선포하고, 첨탑을 잘라 철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천안공원에 전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뼈아픈 근대의 역사가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8월 1일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이 먼저 철거됐고 이어 1996년 11월 전체 건물을 폭파하는 공법으로 완전히 제거되었는데요. 2년 뒤인 1998년 독립기념관은 중앙돔 첨탑과 철거 과정에 발생한 부재들로 천안시에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개방했습니다.

일제의 잔재를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조성된 총 1천2백70평 규모의 이 전시공원에는 높이 8m, 무게 30t의 첨탑, 정초석, 난간 석조물 등 17종이 전시돼있습니다. 이곳이 일반적인 전시공원과 다른 점은 전시물들이 마치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듯 성의 없이 흩어져 있고 관리조차 되지 않은 듯한 스산한 느낌을 풍긴다는 점인데요.

이유는 바로 일재의 잔재이자 우리나라의 치욕이었던 철거 부재들을 관리, 전시할 수 없어 전시하되 홀대하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첨탑이 지하 5m에 매장되어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전시된 점만 봐도 알 수 있죠.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외출 자제하는 이들을 위해 가상현실(VR)로 공원을 둘러볼 수 있는 특별체험도 마련됐는데요.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전시공원에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