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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꿈꾸는 인생 역전을 실제로 이룬 이가 있습니다. 암울했던 과거,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했던 그는 '죽기 전 SNS 친구들을 모두 만나보자'라는 생각으로 본인만의 여정을 시작했죠. 어느새 7년째,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발간되었고 그간 만났던 SNS 친구들의 수는 10,000명이 다 되어갑니다. 이젠 어두운 현실에 갇혀있는 학생들에게 인생 컨설팅을 해주기도 하는 국내 1호 SNS 작가 이창민 씨를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대한민국 SNS 1호 작가



SNS 작가, 어떤 일을 하시나요?


"SNS 상에서 글을 쓰시는 분도 있고 저처럼 SNS 플랫폼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 역시 SNS 작가가 하는 일입니다." 이창민 작가는 SNS 친구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영상, 사진, 글 등을 제작하고 있으며 3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엄친아 형, 왕따...'불운의 아이콘'



이창민 작가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창시절에 대해 묻자"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였어요."라며 의외의 답변을 했는데요. 과거 그는 따돌림을 당했고 '천재'라고 불리는 형과 비교를 당하기도 하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가수라는 꿈은 오디션에서 좌절됐고 꿈을 잃은 채 자유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죠. 2학년 때, 성격을 바꿔보고자 컨벤션 이벤트 학과에 진학했으나 생각한 방향과 달라 결국 중퇴를 결심했습니다. 최종 학력은 고졸, 취업의 문턱은 더욱 높아졌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CJ 콜센터에 취업하게 되었죠. 


instagram@lcm8194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간을 이식해드렸고 이후 교통사고까지 당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선 그의 상황을 '불운'이라 표현했습니다. 당시 그가 유일한 도피처는 바로 SNS였죠. SNS에 부정적인 글들을 올렸고 얼굴 한번 본적 없던 SNS 친구들이 그를 위로했습니다. 좋지 않은 생각까지 했던 그는 '죽기 전에 이 사람들이라도 만나보자'라는 생각으로 SNS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죠.


"스토커 아니에요" 험난한 시작


10,000명의 인터뷰이, 시작은 어땠나요?


SNS 친구들에게 연락해 만남이 성사된 이들이 사는 지역으로 찾아가는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얼굴도 모르는 그를 흔쾌히 만나주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는"처음엔 스토커, 사기꾼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당연한 반응이죠."라고 답했는데요. 수많은 거절을 당했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만남이 이뤄져도 인터뷰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하다 소극적인 태도에 자리를 떠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미간만이라도 보자', '이 질문이라도 하자'라고 생각하며 극복을 위해 노력을 이어갔죠. 이외에도 인터뷰 비용, 교통비, 휴대폰 요금 등 당장 그가 해결해야 할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공사장 막일 등 단기 알바로 돈을 벌어 여행을 떠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독하다'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몇 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의 이야기는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죠.  


고졸 백수, '소통하는 작가'가 되다


벌써 세 번째 책 출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나요?


글쓰기를 배운 적도, 만화책만 즐겨본 이창민 작가는 어느새 3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소통'에 집중한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며 유명인들과의 인터뷰가 조금씩 성사됐죠. 얼마 전에도 모델 안젤리나 다닐로바, 댄스 트레이너 배윤정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이들과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책 출간 역시 인터뷰를 하다 증강현실 회사 대표를 우연히 만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instagram@lcm8194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로 영화 '타짜'의 캘리그래피를 맡은 이상현 작가를 꼽았습니다. 이상현 작가는 인터뷰는 물론, 이창민 작가 책의 캘리그래피를 담당하며 특별한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죠. 이외에도 그는 같은 1세대라는 이유로 인터뷰를 수락했던 래퍼 더블케이가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베스트 셀러 작가, 달라진 것은?


베스트셀러 작가, 상황이 많이 좋아졌나요?


이창민 작가는 얼마 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연예인들이 홍보를 해주고, 드라마에서도 그의 책을 볼 수 있었죠. 과거와 비교해 묻자 과거 아르바이트와 작가 활동을 병행했을 당시 150만 원을 벌었었다고 답했는데요. 현재는 당시보다 훨씬 높은 수입이 생겨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입니다. 


instagram@lcm8194, facebook 이창민

과거엔 작가 활동 이외에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요즘은 각종 강연, 컨설팅, 기업의 대외협력이사, 정책 관련 국민 참여단으로 활동하며 수입과 커리어를 함께 쌓고 있습니다. 또, "돈도 안되는 걸 왜 하냐"라고 이야기했던 주위 사람들과 가족들 역시 그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소극적이고 회피만 하던 성향 역시 당당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으로 변화했죠. 


또다른 '1호'를 꿈꾸는 이창민 작가



앞으로 어떤 '1호'가 되고 싶으신가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에게 어떤 분야의 1호가 되고 싶냐고 묻자 그는 SNS 문화 관련 프리랜서 직군들의 권익 성장과 보호를 위한 단체를 준비 중에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폭넓은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포기했던 학업에 도전해 곧 경영학 학사 학위를 취득할 예정입니다. 


인터뷰는 언제까지 진행하실 건가요?


그는 인생을 완전히 바뀌게 한 인터뷰를 평생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60세까지 10만 명을 달성해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것은 또 다른 꿈 중 하나입니다. 그는 최종적인 목표가 '글'에 한정된 작가가 아닌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죠.


facebook 이창민

마지막으로 본인처럼 암울한 경험들로 사회와의 단절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너무 빨리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전반'을 뒤집으면 '반전'이 된다며 우울한 시간에 머무르기보단 그 반대로 행한다면 얼마든지 인생에선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죠. 힘든 시간 속에서 작은 도전을 시작으로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작가가 된 이창민 작가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